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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가뭄, 기후변화의 증거인가

    어느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가뭄 피해가 크다. 충남 서북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저수율이 0%가 되어 기능이 정지된 저수지가 속출한다니, ‘최악의 가뭄’이란 표현이 빈말이 아닌 모양이다. 어떻게든 농사 피해를 줄이는 것이 큰 걱정거리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걱정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생계가 달린 중대사가 아닌가. 정부는 가뭄 대책뿐 아니라, 곧 현실이 될 가뭄 피해를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하기 바란다. 뉴스에 늘 나오는 것 같지만, 가뭄에 대한 관심과 의제는 보편적인 것이 되기 어렵다.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면 급수 제한, 상수도 정도가 문제일까 직접 영향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아직은 대부분 지역에서 수도가 멀쩡하니, 걱정은 간접이고 추상이다.   일부만 관심을 보이는 문제면 정부와 사회가 힘을 모아 대응하는데 동력이 달린다. 대처 방식도 몇 가지, 그것도 당장 효과가 있을 법한 기술적인 방법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굴착과 양수기 같은 전통적 방법들이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항구적’ 대책을 마련한다 하나, 그때뿐이다. 그나마 수계연결이나 추가 용수원 확보, 댐 만들기 같은 (때때로 저의가 의심스러운) 토목 패러다임. 가뭄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대책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그 일조차 지지부진인 모양이다.   오늘 우리는 가뭄으로부터 기후변화를 생각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피해에 대한 대응(부분)에서 ‘기후변화’의 정치(보편)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별개의 문제거나 관련이 있더라도 꽤 먼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근본에서 두 문제가 (완전히) 만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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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일이 이번 주 화요일, 5월 9일이다. 유권자의 26%가 사전투표를 했다니, 선거일이라기보다는 그날 선거가 끝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칠 수는 없지만, 어떤 후보가 되더라도 비슷한 과제가 남는다. 시민의 관점에서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 몇 가지를 부탁한다. 스스로 다짐하는 것도 포함한다.   첫째, 이른바 ‘통합’에 대하여   선거 과정에서 거의 모든 후보가 ‘통합’을 주장했다. 다들 통합을 위해 가장 좋은 후보라고 자임했으나, 우리는 그 실체를 잘 모른다. 무엇을 통합한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일반 시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인 의회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법 하나를 고치려 해도 큰 당 하나가 반대하면 잘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경험한, 그 악명 높은 언론권력의 지형은 또 어떤가? 지금 여러 후보가 말하는 통합이 그런 상황을 이기는 방도인가? 어떻게 하려고? 통합이 서로 다른 현실 정치세력이 권력과 자리, 자원(돈)을 나누는 것이면, 그것은 시민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누가 하고 장관 자리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당의 지지가 약한 지역에 무엇을 지어주고 무엇을 옮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 시기 나쁜 짓을 했지만 통합 차원에서 그냥 덮는다? 겨우 이런 뜻이면, 또는 ‘나눠 먹기’나 ‘야합’ ‘이합집산’을 뜻한다면, 우리는 그런 통합을 반대한다. 통합은 ‘국론 통일’이거나 두루뭉술한 중도,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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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원인’의 시대, 미봉책으로 안 된다

  먼저 미세먼지 문제. 서울이 ‘세계 주요 도시 중 3대 오염 도시’라니 기가 막힌다(기사 바로가기).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마스크를 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다. 미세먼지는 보는 것, 냄새, 숨 쉬는 것, 불편과 기분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건강과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니 큰일이다. 며칠 전 알게 된, ‘기타 동아시아 국가’에서만 한 해에 3만여 명이 죽는다는 연구결과는 섬뜩하다(기사 바로가기). 정상 국가라면 이런 문제를 그냥 놔두겠는가. 한국 정부도 원인을 찾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도 미세먼지 대책을 말해야 할 형편이니, 미세먼지는 이제 정치다. 문제는 ‘화끈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오염이 심한 날 소화전을 끌어다 물청소라도 하겠다니, 안 할 수도 없지만 미봉책 수준을 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방 효과를 볼 대책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기사 바로가기). 주요 원인이라는 중국의 공장, 화력발전,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것을 하루아침에 무슨 수로 바꾸겠는가. 이런 ‘근본 원인’은 당사자가 많고 복잡하며, 해결하는 데 오래 걸린다.   다음은 저 유명한 저출산. 2016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는 40만 6,3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2017년 1월 출생아 수는 3만 5,100명으로 작년 1월 대비 11.1% 줄었다. 월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1월 기준으로 가장 적다(기사 바로가기). 지난 10년간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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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논쟁 좀 합시다

  대통령 선거가 40일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후보를 뽑는 경선이 시작되었으니, 분위기는 더 달아오를 것이다. 여느 사람들도 모인 자리마다 대선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요 정치의 시기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선거에서 전혀 ‘진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와 정치가 주체와 그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면, 강점과 함께 모자람과 약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강점이 커졌거나 약점이 극복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라고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이겠는가. 한국의 정치는 지지부진이다.   정당의 현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정당의 역할은 구태의연하다. 구성원 개인이 아니라 정치세력이 경쟁해야 하건만, 정당은 어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그리하여 정치세력을 대표하지 못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서로 나누어 경쟁할 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결국 이번 선거도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다. 정치세력이나 정당이 아니라 개인에 의존하는 한, 누가 대통령 노릇을 잘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용모, 언변, 분위기, 인터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디를 찾아다니나 누구를 만나나 주변 사람이 누구인가로 판단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성명서와 발표문, 연설로? 어떤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라고 하지만, 그도 다 무용하다. 언론이 즐겨 쓰는 말을 빌려오면,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가 불가피하다.     우선 우리부터 패러다임을 바꾸자. 개인 대통령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만드는’ 것으로. 이미 그들이 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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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불평등’ 이슈가 사라진 이유

  토마 피케티를 기억하시는지? 그가 쓴 <21세기 자본>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것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2014년 9월 피케티가 한국에 온 때가 정점이었을 것이다. 자칭 타칭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언론과 사람들은 <21세기 자본>에 열광했다(예를 들어 당시 한 ‘유력’ 경제신문이 보도한 것을 보라.  기사 바로가기 ). 피케티와 <21세기 자본>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시대정신’ 불평등을 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와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등이라 읽었다. 날로 심해지는 경제적 고통, 예를 들어 청년실업,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비정규직, 노인 빈곤 등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말로 불평등만한 것이 있었을까. ‘1대 99 사회’가 유행한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1대 9’라고 하든 ‘5대 95’라고 하든 무슨 상관인가. 극소수 부자와 특권층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는 것, 그리고 그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것을 가리킨다. ‘흙수저-금수저’ 논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5년 중반부터 인터넷과 언론을 후끈 달구었다(기사 바로가기). 여기다 원천이 같은 ‘헬조선’까지 보태면 분노와 체념의 시대정신이 한껏 드러난다. 이런 ‘사회적 언어’는 한 시대의 정조나 한때의 유행이라 할 수 없다. 엄연히 실재하는 경제, 사회적 구조가 드러나고 개인의 삶에 미친 결과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오래 쌓인 적폐, 유산, 후유증이 삶으로, 그리고 말로 드러난 것이다. 불평등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징후라 해야 한다.     불평등이 심하고 점점 더 나빠진다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주말 OECD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바로가기).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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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제4차 산업혁명’인가?

    제4차 산업혁명은 정치다   대선 주자 몇 사람이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을 둘러싸고 티격태격했다 (기사 바로가기). 그 말싸움의 자초지종을 따질 생각은 없다. 누구 말이 맞는지 누가 더 열심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이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논쟁을 벌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제4차 산업혁명이 이미 한국 정치로 진입했다는 증거.   경과와 내용,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처음부터 뜬구름 같은 말과 개념이다. 누구한테 물어도 어지럽고 모호하다. 인공지능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말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뒤섞어 말과 개념을 ‘만들어내는’ 중이어서다.   이 개념을 만들고 전도사 노릇을 한다는 클라우스 슈밥의 말을 들어도 희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에서 버티기를 하는 그분도 읽었다는 <제4차 산업혁명>(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펴냄)을 봐도 그렇다.   그는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는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 속도: 제1~3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제4차 산업혁명은 선형적 속도가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전개 중이다….   ■ 범위와 깊이: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을 융합해 개개인뿐 아니라 경제, 기업, 사회를 유례없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유도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시스템 충격: 제4차 산업혁명은 국가 간, 기업 간, 산업 간 그리고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이 막 발흥할 때도 ‘혁명’이 등장했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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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통] 자연재해의 트라우마, 물질남용으로 이어져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박여리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진도 5.8의 지진은 한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한반도만큼은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해왔던 통념이 무너졌다. 적절한 후속 조치 없이 여진만 500회 이상 계속된 채, 경주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서리풀 논평: 지진까지 보탠 ‘위험 사회’) 많은 학자들과 언론은 피해지역 주민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경주지역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포함한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주지역 뿐만 아니라 인근 포항, 대구, 울산 등지의 주민들 역시 지진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자연재해의 트라우마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지진 트라우마 컨트롤타워 마련 시급) 지난 10월, 미국의 ABC news는 자연재해가 물질 남용 장애(sub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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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의 ‘정치경제’를 드러내는 것

    유전자변형생물체(GMO)가 다시 말썽이다. 몇 가지 일이 겹쳤는데,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농업진흥청이 유전자변형 벼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것을 적극 변호하고, 이에 반대하는 농업, 환경, 시민, 소비자 단체는 큰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바로가기). GMO가 환경과 건강, 농업에 유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런 행동의 논거다(가장 최근의 글로는 다음을 참고).   GMO를 찬성하는 주장도 여전히 강하니 혼란스럽다. 1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게 GMO 반대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에 속한다(그린피스의 반응을 포함한 좀 더 자세한 기사 바로가기). 한국의 어떤 과학자 단체는 “일부 반대론자들이 유전자변형생물체(GMO)에 대한 근거 없는 우려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도전이며 방해 행위”라고 대놓고 비난했다(http://bit.ly/29eALal).   GMO 표시기준을 규정한 법안(고시)을 개정하는 문제도 시끄럽다. 식약처가 ‘유전자변형식품등의 표시기준’을 바꾸려고 하는데, 사실은 GMO 표시제를 후퇴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 간장, 식용유, 당류, 증류주에 대해서는 GMO 표시를 제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NON-GMO’와 ‘GMO free’ 표시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마침 GMO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GMO 표기를 둘러싸고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시작은 작은 주인 버몬트 주. 이달(7월)부터 이 주 안에서 유통되는 모든 식품에는 GMO 표기가 의무화되었다. 거대 식품회사의 반대를 이기고 법 시행에 성공했다는 점도 이목을 끌지만, GMO의 본국에서 틈이 생겼으니 중대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전과 이후의 경과는 생략하지만, 일이 전국으로 번져 의회가 나섰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다.

세미나, 소식

[취소 안내] 특별 초청 세미나 ‘기본소득과 건강’

  긴급 공지합니다 초청 연자인 에블린 포르제 교수가 건강 문제로 이번 방한 일정을 취소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저희 연구소에서 개최하고자 했던 특별세미나도 취소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편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자본의 전략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유력한 수단으로써,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는 제 16차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대회를 맞아 방한하는 보건경제학자 에블린 포르제 (Evelyn L. Forget) 교수를 초청하여 ‘기본소득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특별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단,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사전 신청 15명에 한해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일시: 2016년 7월 11일 (월) 오후 2시~5시 장소: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세미나실 프로그램 (1) 에블린 포르제 (캐나다 마니토바 대학교, 경제학) “기본소득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 이론과 사례” (2)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보건정책학) “기본소득과 건강보장” (3) 질의 응답과 토론 참가신청: phikorea@gmail.com (선착순 15명까지) 한글 슬라이드와 함께 발표는 영어로 진행됩니다. 질의응답은 참석자들의 ‘품앗이’ 통역 지원을 통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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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더 불평등한 국민국가로의 회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하면서, ‘브렉시트’라는 낯선 말이 모든 뉴스의 중심이 되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여러 군데서 온갖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방송사는 긴급 좌담에,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도 난리가 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지는 해라고는 하지만 영국은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5-6위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을 묶은 EU가 차지하는 국제 정치, 경제의 비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꼭 지구화, 세계화를 들먹이지 않고도 ‘극동’의 작은 나라까지 큰 영향을 받는 형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나머지 대부분은 혼란스럽다. 온갖 해석과 전망이 난무하지만, 명료한 것은 많지 않다. 브렉시트로 결론이 난 이유에는 이런저런 모든 이유가 다 들어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점’을 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도 관심은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으니, 그것은 경제다. 브렉시트에 이르게 된 경과는 물론이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도 대부분이 경제, 금융, 수출 이야기다. 그래 봐야 결론은 영국과 다른 나라, 그리고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 전부지만, ‘경제주의적’ 해석은 그만큼 힘이 세다. 경제에 추가되는 것이 약간의 국제정치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이 국제정치 판의 ‘동반자’였으니 이도 당연한 일. 미국은 영국이 빠진 EU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정치적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핫이슈’는 EU 자체의 존립이다. 탈퇴 도미노 현상과 EU의 붕괴(또는 무력화)가 현실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