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기후변화

서리풀 논평

최악의 가뭄, 기후변화의 증거인가

    어느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가뭄 피해가 크다. 충남 서북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저수율이 0%가 되어 기능이 정지된 저수지가 속출한다니, ‘최악의 가뭄’이란 표현이 빈말이 아닌 모양이다. 어떻게든 농사 피해를 줄이는 것이 큰 걱정거리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걱정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생계가 달린 중대사가 아닌가. 정부는 가뭄 대책뿐 아니라, 곧 현실이 될 가뭄 피해를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하기 바란다. 뉴스에 늘 나오는 것 같지만, 가뭄에 대한 관심과 의제는 보편적인 것이 되기 어렵다.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면 급수 제한, 상수도 정도가 문제일까 직접 영향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아직은 대부분 지역에서 수도가 멀쩡하니, 걱정은 간접이고 추상이다.   일부만 관심을 보이는 문제면 정부와 사회가 힘을 모아 대응하는데 동력이 달린다. 대처 방식도 몇 가지, 그것도 당장 효과가 있을 법한 기술적인 방법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굴착과 양수기 같은 전통적 방법들이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항구적’ 대책을 마련한다 하나, 그때뿐이다. 그나마 수계연결이나 추가 용수원 확보, 댐 만들기 같은 (때때로 저의가 의심스러운) 토목 패러다임. 가뭄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대책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그 일조차 지지부진인 모양이다.   오늘 우리는 가뭄으로부터 기후변화를 생각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피해에 대한 대응(부분)에서 ‘기후변화’의 정치(보편)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별개의 문제거나 관련이 있더라도 꽤 먼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근본에서 두 문제가 (완전히) 만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재를

서리풀 논평

기후 변화, “우주가 도와주니” 한국은 무풍지대?

기후 변화 논의, 이렇게 둔해도 되나   지난 11월 30일 파리에서 시작되어 2주간 진행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끝났다. 다행히 ‘파국’은 피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1.5도로 묶어놓고자 195개국 모든 나라가 온실 기체(온실 가스) 감축에 기여하자는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었다. 이 정도의 합의가 나오기도 쉽지 않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온실 기체 감축 목표와 재원 분담금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폐막을 앞둘 때까지 미국과 중국이 막판 협상을 하고 있어서 합의가 과연 나올지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 논평의 관심은 어떻게 합의가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는 그 이전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가 기후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논의해야 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초점이다. 지난 2주간 계속된 회의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한국의 현재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이 회의를 주목했지만, 한국 사회는 달랐다. 회의에 참석한 대통령과 환경부장관, 그리고 한 국회의원이 논란을 일으켰을 뿐(☞관련 기사 : “박 대통령, 파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국제 망신”, 박근혜 따라서 나경원도 파리에서 ‘국제 망신’) 국내에서는 꼭 필요한 반응과 논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당과 제1야당이 그 흔한 논평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실상이자 실력이다(발표했지만 언론이 전혀 다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달라질 것이 없다). 기후 변화가 역사적 도전이자 시대적 과제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 언론은 이

외부 기고문

[고래가 그랬어: ‘건강한 건강수다’] 기후변화와 건강불평등

♥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통권 130호부터 연구소 회원들로 구성된 필진이 ‘어린이 건강권’에 대한 이야기를 싣기로 했습니다 ♥ 필자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경자 (순천향대학교 간호학과) 김유미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류재인 (신구대학 치위생과) 서상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형숙 (순천향대학교 간호학과) 박진욱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141호> 글: 박진욱 고모, 그림: 소경섭 삼촌 아래 PDF 파일을 다운받으면  글과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리풀 논평

환경의 역습이 노리는 사람들

  사람마다 올 여름이 덥다고 난리다. 실제 기온이 더 높을 수도, 그냥 더 덥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덥다는 것은 어차피 주관이 섞였고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수치만 보면 올 더위가 유난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이 지난 10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열대야가 연일 신기록을 세운다니 평균이란 말을 믿기는 어렵다.    물론 겨우 10년을 두고 기온 변화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은 100년, 200년 간격의 변화이다. 그 사이 지구의 온도는 0.5도에서 1.5도 정도 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의 감각으로는 1도 정도의 기온 변화에는 대체로 대범하다(!). 아열대 기후가 되었느니 또는 명태가 없어졌느니 하는 뉴스를 재미 삼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젠가 하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사실 기후변화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정부문서나 언론에도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연구소나 대학에서 발표하는 이 분야 연구도 훨씬 많아졌다. 말로나마 걱정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기후변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일부 전문가와 환경에 관심이 큰 사람들만 관심을 기울이는, 말하자면 비주류 의제의 신세라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기후변화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국제적인 분위기와 비교하면 영 뜨뜻미지근하다. 강 건너 불구경 분위기라고나 할까. 정치와 정책도 ‘녹색성장’ 담론이 압도하는 수준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서리풀 논평

더위, “사회적 죽음”을 부른다

  1995년 7월 12일부터 16일 사이, 미국 시카고에서는 최고기온은 낮은 날이 34도에서 높게는 41도에 이르렀다. 닷새 만에 739명이 폭염 때문에 사망했는데(사망자 수는 추정한 것이어서 조사에 따라 다르다), 미국의 어떤 재해와 비교하더라도 더 많은 숫자였다고 한다. 숫자도 숫자지만, 피해가 일부 집단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부분 사망자는 도심에 사는 빈곤층 노인이었는데, 냉방시설이 없거나 시설이 있더라도 전기료 때문에 더위를 그냥 견뎠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걱정해서 작은 창문조차 닫아 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2003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폭염과 사망도 유명하다. 8월 4일부터 18일 사이에 프랑스 전국의 기후관측소 중 3분의 2가 35도 이상의 최고온도를 기록했고 15%에서는 40도 이상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예년에 비해 1만 5천명 가까운 사람이 더위 때문에 더 사망한 것으로 분석했다. 도시에 있는 좁은 방(원룸이나 프랑스식 옥탑방이 많았다)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시카고와 비슷하다.               엄청나게 덥지만 않으면 괜찮을까 싶지만, 여름에 기온이 올라갈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종합한 정설이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될 리 없다. 1994년에서 2003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2006년 서울대 김호 교수 연구팀), 서울의 경우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사망률이 16.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다른 대도시에서도 경향이 비슷하다.    방식이야 어떻든 더위가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확실하다. 시카고나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다. 더위는 그저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