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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지방분권 논의, 너무 늦고 약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개헌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이다. 제헌절(바로 오늘이다!)을 활용하는 홍보 활동인지는 모르나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여론 수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정도 내놓았다. “대통령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에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제헌절을 기점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 추진돼야 한다.” (기사 바로가기) 개헌특위가 제시한 ‘국민참여형’ 개헌 논의의 방법과 일정은 이렇다.   △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국민대토론회 개최(8월말∼9월말, 11회) △ 누구나 개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국민개헌 자유발언대 설치·운영(9월∼) △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개헌국민대표 5,000명을 선발해 주요 쟁점을 숙의·토론하는 개헌국민대표 원탁토론(10월, 4회) △ 직접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국민을 위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홈페이지 개설.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과 부합하는 만큼(<서리풀 논평> 2017년 7월 3일, 바로가기, 우리는 국회 개헌특위의 이런 활동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이것만으로 ‘시민 참여’가 충분하다 할 수 없으나, 또 다른 주체들이 다양한 과정을 통해 보완하고 키워 갈 일이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여 무엇을 다룰 것인가? 건강권을 포함한 기본권 강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되풀이하지 않는다. 바로 2주 전 <서리풀 논평>에 기본권이 핵심이라는 우리 주장의 논거를 밝혀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 한 가지는 보태는 것이 좋겠다. 바로 며칠 전 국회의장실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3.9%가 헌법상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조사의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서리풀 논평

개헌, 과정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내년 지방 선거 때 개헌을 하자고 제안한 후 개헌 논의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국회 개헌특위가 내년 2월까지 개정안을 만든다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국회는  분과별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토론회까지 개최하는 중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누구든 첫째 관심은 새로운 헌법에 무슨 내용이 담길 것인가 하는 것. 우리는 이미 2014년 10월에 사회권적 기본권을 강화하고, 그런 맥락에서 ‘건강권’을 적극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기본 방향을 주장했다(서리플 논평 ‘새로운 헌법의 조건’ 바로 가기). “우리는 개헌 논의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권은 상세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국가의 의무도 당연히 따라간다….(중략)… 소득, 교육, 고용, 노동조건, 환경, 주거…기본권마다 더 자세한 권리의 목록을 포함해야 하고,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조건과 환경이 바뀌었으니, 권리의 ‘최저’ ‘기본’ 또는 ‘적정’의 수준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의견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슷한 취지에서 ‘기본권 보장 강화를 위한 헌법개정안’을 만들고 며칠 전 토론에 붙였다(국가인권위원 보도자료 바로 가기). 일단 방향을 이렇게 잡은 것을 환영하고 더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기본권 강화가 개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또 있다. 지난주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제주인권회의’에서도 ‘개헌과 인권’이 핵심 주제의 하나로 다루어졌다(한국인권재단 공지사항 바로 가기, ‘한국 사회 인권을 말한다…제주인권회의 열려’ 기사 바로 가기). 인권과 기본권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이라야 시민의 삶이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공통된 인식이 논의 배경이 되었으리라. 헌법 개정안은 지금도 ‘구성’되는 중인만큼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다만, 현재 논의 정도와 수준을 고려할 때 기본권이 얼마나 강화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기본권 중에서도 이른바 사회적 기본권(또는 ‘사회권’), 그리고 우리의 관심인 건강권은 더 불확실하다. 이 논평은 주로 건강권에 관심을 두지만, 다른 사회적 기본권도 근본에서는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이 크게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정안에서도 드러난다. 이 개정안은 건강권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모든 사람은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질병 예방과 보건의료체계의 향상 등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로 정한다.” 개정안이 기존 헌법 조항(“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은 분명하나, ‘건강을 향유할 권리’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다. 질병 예방과 보건의료체계의 향상 등을 법률로 미루었으니, 국가의 책무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한계가 명확하다. 국회 개헌특위가 마련한 개정안 초안도 건강권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하기 어렵다. 특위의 분과에서 만들었다는 초안의 건강권 조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적절한 보건,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 초안은 건강권을 건강이 아니라 보건,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국가의 책무는 ‘의무’가 아니라 ‘노력’하는 것에(전통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조항만으로는 새로운 헌법도 건강권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지침 노릇을 하기 어렵다. 시민사회단체가 제안하는 건강권은 훨씬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가 중심이 된 ‘개헌과 사회권 토론회’(2017년 5월 24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초안이 제안되었다. ① 국내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정신적 및 육체적 건강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의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건강권이 침해되지 않는 수준의 적절하고 합리적인 의료보장 및 공공 보건서비스 및 관련 제도를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책임 하에 제1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공의료를 확충하여야 한다. ③ 국가는 질병 및 사고를 당한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생명 또는 신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긴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적절한 의료보장을 실시하여야 한다. 분명히 나아진 것이나 우리는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건강권은 보건의료 서비스나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권리를 넘어 누구나 건강한 상태(결과)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최근 ‘사회적 결정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잘 알려진 만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 교육, 노동, 고용 등도 권리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회적 기본권에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다음 글을 참조할 것. ‘개헌과 건강권’ 바로 가기). 국가의 책무도 더 적극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사회권에 대한 국가 책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샌드라 프레드먼의 주장에 동의한다. 권리를 모두 충족하지 못해도 또는 그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의무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그것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즉, 권리가 충족되는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의무는 존재한다(샌드라 프레드먼 지음, 조효제 옮김. <인권의 대전환>, 교양인 펴냄). 적극적으로 건강권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지금은 건강권이 선언 수준 이상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인정한다. 헌법 개정과 그 방향이 상황과 맥락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면, 건강권을 보장하는 수준은 시민과 대중이 이해하고 참여하며 논의하는 것 이상으로 ‘돌출’할 수 없다. ‘사회적 이해’의 수준을 고려하면 건강권(나아가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강한 지지와 옹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취약한 사회적 이해 또는 기반 때문에라도 내용을 넘어 헌법 개정의 ‘과정’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부 집단과 정치인이 아니라, 대중과 시민이 개헌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2016년 7월 18일 <서리풀 논평> ‘시민이 이끄는 개헌 논의를’ 바로 가기). “우리는 개헌이 목표로 하는 헌법 내용보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중략)…누가 개헌을 이끌고 과정을 지배하는 주체인가? 형식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뜻보다는 헌법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논의가 민주적이고 참여적일 때, 결과로서의 헌법은 비로소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시민이 만들어가고 또 만들어내는 헌법, ‘시민의 헌법’이 필요하다.”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거듭 주장한다. 어떤 형식과 절차든 기본권, 사회적 기본권(사회권), 건강권을 배우고 논의하며 요구하는 것이 더 좋은 헌법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회의, 만민공동회, 시민행동, 그 무엇이든 좋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토론하고 요구해야 한다. 농민, 어민, 비정규 노동자, 아동,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 담지 않고 어떻게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단 말인가? 건강권도 마찬가지다. 삼성반도체 건강 피해 노동자, 핵발전소 주변 주민, 홈리스와 쪽방 거주자, 비정규 노동자, 섬에 사는 노인이 건강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지 못한 채 건강권을 규정할 수 있을까? 건강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따질 수 있을까? 더 많이 참여하고 어떤 소리라도 내고 듣는 민주적 개헌이 필요하다. 시간이 모자라면? 꼭 내년 4월에 개헌을 해야 할 급박한 이유가 있는가? 필요하면 시기를 늦추고 차분하게 그러나 치밀하게 논의해야 더 좋은 헌법을 가질 수 있다.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 더 신중해야 한다.

소식, 월례세미나

[2016년 11월 월례세미나] “브라질 민중건강평의회”

모두에게 열려있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월례세미나 2016년에는 “더 좋은 건강체계를 향한 세계의 노력 (대안보건의료체계 프로젝트)”이라는 연간주제로 매월 말 열립니다. 11월 월례세미나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김새롬 선생이 브라질의 민중건강평의회를 소개합니다. 김새롬 선생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교실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쳤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생으로 있으면서 ‘시민참여와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김새롬 선생의 강연을 통해 브라질 민중건강평의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좋은 건강체계의 이념과 구조, 그를 위한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제목: “브라질 민중건강평의회” 연자: 김새롬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일시: 2016년 11월 30일 수요일 저녁 7시 장소: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세미나실 (서울시 동작구 사당로13길 36 2층, 찾아오시는 길 http://health.re.kr/?page_id=2) 기타: 참가비 없음, 누구나 환영 문의: 김선 연구원 (phikorea@gmail.com 02-535-1848)

서리풀 논평

성남시의료원과 지방자치

  지난 6월 2일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이 문패를 달았다. 2017년 12월에 문을 열 예정이지만, 병원을 짓는 중에 기관을 먼저 ‘창립’하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당부를 말하기 전에 의료원이 출범한 것을 축하하고 앞날을 응원한다. 오랜 기간 성남시에 공공병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시민들에게 특별한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많은 당사자의 노력과 실천 가운데서도 2003년 이후 구심점 노릇을 한 시민의 사회적 연대(특히 현재의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를 기억하려 한다(바로가기).   성남시의료원이 건립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공공병원이 늘어나는 것 그 자체에 뜻을 두고 싶다.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공공병원의 수가 적고 역할이 빈약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새로 공공 의료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중요한 ‘실험’이다. 단 한 개가 늘어난다고 해도, 압도적 주류 경향을 거스르는 ‘사건’이라 불러야 한다. 다른 지방 정부가 자극을 받고 중앙 정부가 긴장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시민들이 만들어낸 공공병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대 이후 ‘공공의료 강화’는 시민과 소비자, 환자들의 공통된 요구였지만, 성남시의료원과 같은 구체적 성과는 드물다. 행정과 현실 정치, ‘그들’의 결정이 아니라 주민과 시민이 참여하고 실천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과 주민이 주도한 ‘민주주의’ 확대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더디고 힘든 민주주의의 실천, 그중에서도 더 어려운 지역의 민주주의 실험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단언하지만, 우리는 성남시의료원의 설립과 그 경과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보편’으로 확대될

서리풀 논평

메르스 감사를 다시 하라(하자)

  감사원이 메르스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 누리집에 공개된 보고서만 500쪽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이다 (감사원 보고서). 제대로 보기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조사할 일이 많았다는 뜻일 터.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잘못된 일의 책임자를 찾고 책임을 묻는 것은 더 그렇다.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질병관리본부장이 모든 책임을 졌다. 징계를 받을 다른 공무원도 모두 실무자다. 한참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책임을 둘러싼 투쟁의 뻔한 결과. 세월호가 그랬고, 메르스에서도 진작부터 예상되었던 바다(관련 서리풀 논평.바로가기1, 바로가기2). 용한 점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감사원이 ‘책임의 정치’를 둘러싼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건소 직원까지 징계하라고 했지만, 장관은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장관의 사퇴, 새로운 공직 취임과 감사결과 발표는 시점도 절묘하다. 그뿐만 아니다. 당시 기자회견에 총리, 부총리가 나섰던 것은 홍보용 보여주기라 해도, 이들을 비롯한 최고 권력층이 실제 정책 결정에 간여했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들은 책임과 징계는커녕 감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감사원 감사에 무얼 기대하느냐는 소리가 나오지만, 이젠 이런 비판조차 새삼스럽다. 과거는 물론이고 최근에도 비슷한 시비가 여럿이다. 지난 정권이 저질렀던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을 이제야 감사한 것, 그리고 그 결과는 기억에도 생생하다. ‘책임의 정치’는 감사원의 본래 업무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하지만 행정과 기술, 실무를 탓하는 것으로 ‘책임 묻기’는 끝나지 않는다.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죄를 법률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서리풀 논평

카트리나 10주년, 세월호와 메르스는?

  2005년 8월 29일, 강력한 허리케인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를 휩쓸고 지나갔다. 2015년 8월 29일, 이제 꼭 10년이 지났고 미국 전체가 10주년을 기억하느라 분주하다. 8월 27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고 연설했다.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니 이 일이 얼마나 큰 ‘국가적’ 사안인지 짐작할 만하다. 카트리나 10주년에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거의 하루 종일 한 가지 행사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딴 나라 이야기인 것이 맞다. 흔하고 흔한 미국발 뉴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번 카트리나 만큼은 좀 다른 것이, 몇 년 사이 우리의 현실이 저절로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자 수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세월호와 메르스는 끊임없이 카트리나를 불러낸다. 그들이 재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서 우리의 현실과 할 일을 성찰하려 한다. 사소한(?) 것부터 먼저 보자. 백악관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은 이렇다.   12시 20분 현지 도착 12시 45분 주민과 청소년 면담 2시 55분 지역주민센터에서 열린 ‘회복원탁회의’ 참석 3시 55분 원탁회의에서 발언 5시 현지 출발.   대통령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예외 없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방식은 우리와 좀 다른 것 같다. 백악관이 홈 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연하다(바로가기). 대통령이 원탁회의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형식도 놀랍지만, 기념과 행사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국가적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 왔는지에 이르면 우리의 현실과 직접 이어진다. 작년과 올해, 세월호와

서리풀 논평

메르스 사태 이후, 세월호 참사에서 배우는 것

  여러 곳에서 세미나와 토론회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메르스 사태가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정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벌써부터 많은 진단과 처방이 나오는 데다, 이제는 가히 백가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선에서 숨 돌릴 틈조차 없는 당사자들로서는 서둘러 그 다음으로 가는 것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평가와 대안이 쏟아지는 것을 어찌 막을 것이며, 그 또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마무리가 되고 난 다음을 준비하는 데에는 현실의 감각과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다른 한 가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준비를 말하는가? 지난 주 우리의 논평에서 일부를 다루었으나 (바로가기), 필요한 것은 좋은 리더십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단계로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면, 이 과정은 종합적이고 또한 섬세해야 한다. 바로 지난해에 겪은 (사실은 아직도 진행 중인) 또 하나의 사례 때문에 우리는 이런 ‘연속과 전환’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가, 메르스 ‘대란’이 메르스 ‘이후’로 바뀌는 과정에서 준비하고 찾아야 할 질문과 응답들이다.   첫째, 개인이 아닌 구조 우선, 개인과 사건, 우연과 경험이 아니라 구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문제의 진단만 하더라도, 그게 아니면 메르스 확산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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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에서 월드컵까지 –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복지부가 의료법인의 부대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영리 자법인의 설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본 계획을 발표한 것이 작년 말이다. 후속 조치는 지난 6월 10일 나왔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자법인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이다 (문창극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과 같은 날이다). 당연히(!) 거의 모든 당사자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나 약사회와 같은 의료인 단체, 환자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가 한 목소리다. 한 군데, 병원협회만 묵묵부답인 것으로 봐서 그 생각을 알 만하다(물론 그 이해관계도).   우리는 정부가 당초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런 형태의 영리병원 추진을 일관되게 반대했다(2013년 12월 16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몇몇 의료자본은 살찌우겠지만 서민에게는 고통과 불평등을 안긴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한 마디로 부도덕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그 때 이후로 무엇이 왜 문제인지는 바뀐 것이 없다. 정부가 여러 말로 얼버무리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판단을 바꿀 만한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으니 달리 설명을 보탤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든 영리병원 문제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에 맞닿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선 본질적인 의문 한 가지. 이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가? 정책 결정과 집행의 민주주의를 묻는다.   국민투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다수 의견은 분명하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의료인이나 전문가들처럼 비교적 내용을 잘 이해하는

서리풀 논평

다시 시작하는 민주적 지방자치

  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어느 쪽으로 보기에도 결과가 ‘애매’해서다. 반대의 의사 표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을 보태는 쪽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건 참담한 세월호 사건이 묻힌 것은 아쉽다.   매번 그렇듯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원인 찾기가 부산하다. 하지만 정치나 선거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설명도 그리 명쾌하지 않다. 교육감 선거 결과의 해석이 혼란스러운 것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매우 복잡한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있어서 그럴 것이다. 정권 심판이든 정권 지키기든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진실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그러나 심층적인 분석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그건 이 분야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동안 여러 번의 지방 선거 끝에 배운 몇 가지 교훈을 짚어두자. 한편으로, 몇 주만 지나면 들어설 새 지방 정부에 흔히 벌어지는 잘못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다.   첫째, 지방 자치가 발전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전국 정당이 굳건한 토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선거 제도에 의존하는 한, 한 군데 지방정부만으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속성으로 말하면 더욱 더 그렇다.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낸 많은 지방 정부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선거에 졌다. 그 중에는 이른바 진보 정당이 집권했던 데도 포함되어 있다. 전국적 정치 지형의 압도적 영향력 때문이다. 지방선거의 한국적 특성인지 모르지만, 고립된 노력만으로 온전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전망과 계획을 내놓고 지지를 호소했던

서리풀 논평

누구를 뽑을 것인가

  다음 주면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을 새로 뽑는다. 전과 달리 이번 주 금요일30일)과 토요일(31일)에 사전 투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투표 참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1991년에 처음으로 지방선거가 있었으니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성년이 되었으니 자리를 잡을 법도 하건만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오죽했으면 기초자치체의 정당 공천 문제가 불거졌을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굳이 말하자면 자치가 ‘짝퉁’ 신세여서다. 한국의 지방자치를 흔히 ‘반쪽’ 또는 ‘2할 자치’라고도 부른다. 특히 ‘2할 자치’라는 말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가져왔다. 일본의 ‘3할 자치’는 과거 지방자치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용어로 유명하다. 2할이니 3할이니 하는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는 그대로다.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70퍼센트나 80퍼센트를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재정이 이 지경인데 업무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감투만 늘려 놓은 채 그냥 말잔치로 그칠 수밖에. 그러나 지방 재정 문제는 이 정도로 해둔다. 워낙 해묵은 논란인데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이해가 엇갈려 풀기가 쉽지 않다. 꼭 선거가 아니라도 두고두고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점만 확인해 놓자.   지방자치에 심드렁한 또 다른 이유는 ‘효과’를 확신하지 못해서다. 20년 넘게 계속해 온 이 제도가 과연 지역 주민의 삶을 더 좋게 만들었는가? 어떤 면에서도 후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 지역 토호만 살찌운다는 비판이 내내 매서웠다. 이렇게 된 이유 또한 한두 가지로 줄이기는 어렵겠지만, 선거가 코앞이니 관계된 것 한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