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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공공부문 ‘개혁’을 개혁하라

  작심하고 공공부문을 압박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래도 ‘개혁’이라면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일상사가 된지라 그리 낯설지 않다. 공무원 연금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묶은 종합 패키지라는 것, 그리고 되풀이되는 말의 약효 탓인지 ‘정상화’라는 대통령의 어법을 쓰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개혁인지 자해 행위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정권의 의례인지 판단하려면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핵심 한 가지는 바른 이름, 즉 정명(正名)이다. 공공부문과 공공을 제대로 규정해야 그 다음이 풀린다. 공공부문이 제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공익과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라기보다 흔히 비효율과 철밥통을 상징한다. 정부 고위직도 그리 알고, 생업에 충실한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비효율과 부패라면 꿀릴 것이 없는 기업이 가장 열렬하다.   다시 확인할 일은 국가와 시장, 공공부문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고 그래 왔던 국가와 경제가 공공부문을 ‘식민지’로 만든 탓에 오늘 같은 사달이 났다. 그 가운데서도 사익의 각축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가 대중과 시민을 배제한 것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지금 공공부문은 제 모습이 아니다. 개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히려 사익을 대변하는 국가와 경제 영역이 주인 노릇을 한 결과로 이 꼴이 났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국가를 그대로 둔 채로 국가화할 일도 아니고, 극단적인 사익 추구만 남아 있는 시장을 새로운 상전으로 맞이할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 개혁은 여전히(또는 새롭게) 어떤 사회적 통제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달려

서리풀 논평

영리병원에서 월드컵까지 –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복지부가 의료법인의 부대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영리 자법인의 설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본 계획을 발표한 것이 작년 말이다. 후속 조치는 지난 6월 10일 나왔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자법인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이다 (문창극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과 같은 날이다). 당연히(!) 거의 모든 당사자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나 약사회와 같은 의료인 단체, 환자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가 한 목소리다. 한 군데, 병원협회만 묵묵부답인 것으로 봐서 그 생각을 알 만하다(물론 그 이해관계도).   우리는 정부가 당초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런 형태의 영리병원 추진을 일관되게 반대했다(2013년 12월 16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몇몇 의료자본은 살찌우겠지만 서민에게는 고통과 불평등을 안긴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한 마디로 부도덕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그 때 이후로 무엇이 왜 문제인지는 바뀐 것이 없다. 정부가 여러 말로 얼버무리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판단을 바꿀 만한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으니 달리 설명을 보탤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든 영리병원 문제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에 맞닿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선 본질적인 의문 한 가지. 이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가? 정책 결정과 집행의 민주주의를 묻는다.   국민투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다수 의견은 분명하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의료인이나 전문가들처럼 비교적 내용을 잘 이해하는

소식

회원들께 <지역건강연구실>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이미 6월 13일에 열리는 ‘지역건강연구실 개소 기념 세미나’ 소식을 접하셨겠지만, 저희 연구소 ‘지역건강연구실’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그동안 ‘건강정책연구센터’와 ‘건강형평성연구센터’를 두고 건강권, 민주적 공공성, 건강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구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제 여기에 “지역사회”라는 주제를 더해, 기존에 추구하던 가치들을 좀더 구체화시키고 실천에 응용하는 연구로 활동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지역사회 주민 참여, 지역 간 형평, 보건의료 민간 부문의 공공성 강화 등 탐구해야 할 연구 주제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잘 알고 계시듯 연구소의 인력이나 자원은 매우 부족합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를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은 회원 여러분들의 적극적 참여와 조언, 비판입니다. 이번 연구실 개소 세미나를 시작으로, 지역사회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회원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히 지역사회와 관련된 연구 주제, 공부 모임 등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드림

서리풀연구통

의료체계 불균형 부르는 의료관광

한겨레 2014년 6월 4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 (바로가기)   의료관광이 한류의 새로운 원천으로 떠올랐다. 2009년 국내 병원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한 뒤부터다. 정부는 진료와 관광으로 얻어지는 수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 성장동력이라 말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외국인 의료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학도 의료관광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여는 등 새 수요를 흡수하려고 발벗고 나섰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국가자격시험이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조처도 의료관광과 관계가 많다.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은 의료관광을 측면 지원하는 조처라고 했다. 심지어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관광의 성패를 가를 주요 변수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의료관광은 한국에 앞서 ‘선배’ 국가들이 있다. 싱가포르와 타이가 대표적이다. 이미 참여정부 때부터 이들 국가를 모범 사례로 꼽아 왔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의학협회지>는 의료관광이 타이의 의료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타이 정부의 의료관광 활성화 정책이 정작 타이 국민들의 의료 이용을 막았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기사에서는 의료관광이 타이 국민의 의료 이용을 막은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했다. 우선 전문 의료 인력들이 의료관광 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민간병원으로 옮겨가 국공립병원엔 질 높은 의사 및 간호사가 부족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관광이 활성화되자 민간병원의 진료비가 올라갔고, 높은 진료비를 낼 수 없는 국민들은 의료기관 이용이 힘들어졌다. 민간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살 수 있는 이들은 높아진 진료비를 내야 했고, 80% 이상의 타이 국민들이 이용하는 국공립병원에서는 의료

서리풀 논평

안전한 병원을 위하여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났고, 고작 6분 만에 29명의 사상자가 났다. 최근 들어 워낙 사건, 사고가 많다지만 유난히 가슴이 더 아프다. 요양병원이라니, 어느 정도는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마치 시한폭탄 같은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런 사고가 처음인 것도 아니다.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10년 11월 12일 포항의 한 요양원에서 불이 나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 상황도 이번 사고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4평 남짓을 태우고 30분 만에 진화되었으니 대형 화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동하기 어려웠던 데다 (요양원이니 오죽했을까), 연기에 질식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오래 된 일로 논산의 정신병원 화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1993년 4월 19일 한 개인 정신병원에 불이 나서 34명이나 되는 귀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사고 원인이 이번과 빼닮은 점이 다시 놀랍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자. 허가 받은 병상의 두 배가 넘는 환자에다 관리 인원은 규정보다 훨씬 적었다. 환자의 손발을 묶어 두어 대피가 어려웠고, 시설 특성상 출입문을 쉽게 여닫을 수 없게 만들어 둔 것도 원인이었다. 평소 긴급대피를 위한 체계나 준비가 없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두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배운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거의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고, 같은 진단과 처방이 되풀이된다. 관심과 분노가 불처럼 일어났다가

서리풀 논평

성형수술 ‘소비’의 경제와 사회

  수능을 마친 고3 여학생이 성형수술을 받은 뒤 뇌사상태가 되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솔직히 여기까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진작부터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한 사고 이유가 밝혀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나서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사정이 나쁜지 성형외과 의사들이 나선 것도 눈에 띈다. ‘성형외과의사회’란 의사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썩은 살’을 도려내겠다며 사과했다. 의사회가 밝힌 성형수술의 실태는 그동안 쉬쉬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사고를 낸 병원은 상담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대리 수술을 했고 환자가 모르게 하려고 과잉 마취를 했다는 것이다. 마취제니 의사 운용이니 하는 자세한 사정은 더 한심하다. 여론이 나빠질 만하다. 그러나 이 역시 아주 놀랄 일인가 싶다.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도 별 편법과 희한한 불법이 있으리라 짐작한 바다. 더구나 성형수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상식처럼 떠돌지 않았던가.   ‘예고된 참사’라는 표현이 이상할 것이 없다. 더 정확하게는 ‘예고된’이 아니라 ‘숨겨진’이었다. 오래 된 실상이 우연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비난 받는 당사자는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강하고 온갖 방법이 거론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이라고 무슨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성형외과의 불법을 엄벌하고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무슨 ‘대책’이나 될까.   개인 탓을 하면서 사회 풍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더 공허하다. 성형수술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고 하면서,

서리풀 논평

‘신당’은 무엇을 하려는가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냥 ‘안철수 신당’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는 편이 알아듣기 쉬울 것 같아서다. 사람 이름을 계속 쓰는 것도 민망하니 ‘신당’이라고 줄인다. 그래도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정당을 말하는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좋겠다. 이미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이나 이와 직접 관련된 이슈들을 공부하고 훈련하는 곳이다. 그런 조직이 정당(또는 정치)에 참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버’하는 것인가? 혹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낡은 틀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아니, 권리 정도가 아니라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제 건강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잘 드러낸 그대로다. 건강과 질병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과 경제, 정치와 사회가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당이 기꺼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정당과 정치를 문제 삼는 것은 차라리 의무라고 해야 한다. 꼭 건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개별 영역이든 (교육이든 노동이든 또는 문화든)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공적 영역에서 문제와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와 정당의 소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 이제 본론을 말할 차례다. 그 본론의 결론부터 앞세우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신당’은 종국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밝히라.

서리풀 논평

‘의(醫)-산(産)-언(言)’ 복합체를 해체하자

스무 명 가까운 전문의가 한 자리에 모였다. 어려울 텐데 방송의 재주가 참 용하다. 아니면 역시 방송이 힘이 센가. 이들이 모여 앉아 낯익은 연예인들과 의학 지식을 겨룬다. 또 다른 종편 채널에서는 방송에 단골 출연하는 부부 의사가 보인다. 그런가 싶더니 홈 쇼핑 채널 역시 비슷한 얼굴들이 나타나 열심히 건강식품을 설명한다. 방송인지 광고인지 영 분간하기 어렵다. 어디 그 뿐이랴. 건강이나 의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재주 있는 사람들의 간접 교육이 활발하다. 전에도 아주 없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채널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의학 프로그램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이니 ‘인포테인먼트’ 형식이니 하면서 주력 상품이라도 된 느낌이다. ‘정통’ 의학 프로그램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그리고 영역이 무엇이든 한두 꼭지쯤 의학이 들어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의학 전문 채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사정이 이러니 오히려 역할이나 인기가 시들하다. 방송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신문의 의학 면이야 오래 전부터 있던 것이니 이젠 자연스러운 일상과 같다. 쉬우니 어려우니 광고니 공익이니 하지만, 꿋꿋하게 한결 같다. 방송에 비해 우직하거나 안이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젤까. 그냥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다. 어차피 웃어넘기면 그 뿐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정보의 질로 보자면 단편적이고 휘발성이 강해 큰 영향이 없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신문보다는 방송이 그렇고, 방송 중에서도 오락성이 강할수록 더 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무슨 식품이 몸에 좋다고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서리풀 논평

2013년을 꿈꾸다

곧 새로운 정권이 출발하는 때에 새해를 맞았다. 5년 전에도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새로움과 희망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살아가는 날은 계속된다. ‘멘붕’의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잊지 말자. 2013년 이들의 고통은 줄고 행복은 커져야 한다.   당선자가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곧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벌써부터 몇 사람 인사를 두고 아니나 다를까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아직은 애써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새해, 새 정부가 잘 해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그런 바람이 마땅하다.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래야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가 국정을 잘 운영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도 올 한 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겠다.    첫 번째 초점은 공공성 훼손이다.    새 정부가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은 최소화, 시장은 최대화”라는 현 정부의 기조 역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감시와 비판, 그리고 대안을 가지고 요구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영리병원, 민영화, 의료산업과 시장화 등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대로일 것이다. 익숙한 문제들이 꼭 같은 또는 새로운 얼굴로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정권 재창출은 괜한 말이 아니다.    건강보장(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모두)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과제가 그 다음이다. 그나마 이미 내놓은 공약이라도 소홀하지 않도록

서리풀 논평

농촌과 지방을 버릴 것인가

    열흘 남짓이면 추석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말마따나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명절은 귀향을 뜻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인터넷이 대세지만 열차표를 사려고 역 앞에 긴 줄을 선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런 ‘귀성’ 풍습은 1960년대 이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데서 생겼다. 오랜 전통 같아 보이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최근에야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권이 국토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 것은 반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귀성객 수는 1960년대 말에는 10만 명이 넘지 않았고 1980년대 중반까지도 80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문화와 본능으로 포장되는 귀성은 결국 산업화와 도시 집중이라는 한국적 근대화의 결과물이다. 훈훈한 가족애와 따뜻한 고향이 그려지지만, 고단한 농촌과 피폐한 지방의 모습이 같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사이 농촌의 쇠락은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다. 30년 새 농촌 인구는 70%가 줄어 현재는 농업 종사자가 300만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부분 노령 인구라, 50대 이상 비중이 60%를 넘는다.    경제적 격차도 짐작하는 그대로다. 지난 주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작년 농가 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의 59.1% 밖에 되지 않는다. 도농간의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농촌 내 불평등도 더 심해지고 있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7년 0.402에서 2011년 0.424까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