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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문재인 정부가 건강과 보건 분야에서 무엇을 할지, 대체적인 구상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문재인 케어’로 표현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그리고 ‘치매 국가책임제’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끝이라고 하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이것 말고도 계획이 많고, 아직 준비 중인 것도 여러 가지라고. 시시콜콜한 ‘작은’ 정책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허술한 정부라도 대통령 공약만 신경 쓰는 데는 없다. 그 많은 공무원이 그냥 놀고 있을 리 만무하니, 뭔가 열심히(!) 하고 있을 터.   그래도 진짜 중요한 것은 골격, 국정 원리가 아닌가? 아무리 많은 정책을 늘어놓아도 백년대계가 없으면 새로운 정권이라 말하는 의미가 없다. 정치는 현재와 일상을 관리할 뿐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개척한다.   적폐와 새로움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건강정책, 보건과 의료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니 걱정스럽다. 이미 내놓은 브랜드인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는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것 빼고는 말하는 바가 많지 않다.     다른 것을 그대로 두고 보건의료의 ‘경제’를 바꾸자는 셈이어서 더 걱정이다. 있던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 복잡해져 고질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나 지역 보건을 강화하지 않고 건강보험 급여만 늘리면,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더 몰리고 동네 병원의 의료는 더 왜곡될 것이다.   그 중에도 오랜 숙원,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묵묵부답인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슨 실무나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은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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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연구통通] ‘안아키’, 단지 ‘반反지성주의’만 문제일까?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안아키’, 단지 ‘反지성주의’만 문제일까? [서리풀 연구通] 기존 보건의료가 해결 못하는 필요에 주목해야 김새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요 며칠 인터넷 상에서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카페에 대한 비판이 뜨거웠다. 그 때문에 카페는 폐쇄되었지만, 이를 운영했던 한의사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국민이 수두파티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다시금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한의사협회까지 나서 그가 주장하는 자연치유가 비과학적이며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관련 기사 : 의사·한의사들 ‘안아키’ 비판에 “의료계도 반성해야”),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그를 협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회원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했다(☞관련 기사 : 한의사협회, 안아키 김효진 한의사 회원자격 정지키로). 자연치유의 상징인 백신 거부는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2016년 67개국 조사에서 백신 안전성을 의심한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던 프랑스의 경우 그 비중이 41%에 달했다 (☞관련 연구 : The State of Vaccine Confidence 2016: Global Insights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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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일이 이번 주 화요일, 5월 9일이다. 유권자의 26%가 사전투표를 했다니, 선거일이라기보다는 그날 선거가 끝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칠 수는 없지만, 어떤 후보가 되더라도 비슷한 과제가 남는다. 시민의 관점에서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 몇 가지를 부탁한다. 스스로 다짐하는 것도 포함한다.   첫째, 이른바 ‘통합’에 대하여   선거 과정에서 거의 모든 후보가 ‘통합’을 주장했다. 다들 통합을 위해 가장 좋은 후보라고 자임했으나, 우리는 그 실체를 잘 모른다. 무엇을 통합한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일반 시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인 의회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법 하나를 고치려 해도 큰 당 하나가 반대하면 잘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경험한, 그 악명 높은 언론권력의 지형은 또 어떤가? 지금 여러 후보가 말하는 통합이 그런 상황을 이기는 방도인가? 어떻게 하려고? 통합이 서로 다른 현실 정치세력이 권력과 자리, 자원(돈)을 나누는 것이면, 그것은 시민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누가 하고 장관 자리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당의 지지가 약한 지역에 무엇을 지어주고 무엇을 옮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 시기 나쁜 짓을 했지만 통합 차원에서 그냥 덮는다? 겨우 이런 뜻이면, 또는 ‘나눠 먹기’나 ‘야합’ ‘이합집산’을 뜻한다면, 우리는 그런 통합을 반대한다. 통합은 ‘국론 통일’이거나 두루뭉술한 중도,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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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민간 단체의 ‘공공성’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거지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지원받지는 않았지만, 벧엘선교복지재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어버이연합은 전경련으로부터 ‘뒷돈’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떤 집회를 열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도 따랐다. 세월호 특별법 반대, 한일 ‘위안부’ 협상 찬성, 심지어 김무성, 유승민 의원의 사퇴 촉구까지. 이들은 ‘관변’ 단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한 사람’을 비호해왔다. 야당은 진상 조사 태스크포스(TF) 팀을 발족하고, 전경련-청와대의 커넥션을 밝히겠다며 벼르고 있다. 비영리 민간 단체는 본질적으로 운영 자금을 외부로부터 조달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지원에는 언제나 일정한 통제가 동반된다는 점에서, 지원의 주체와 통제의 범위는 중요하다. 단체의 지향과 사회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영역의 대표적 비영리 민간 단체인 환자 단체는 ‘시민 사회 단체’이자, ‘이해 당사자 단체’다. 노바티스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글리벡 투쟁’을 이어나갔던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전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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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혁신’의 앞날을 묻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거다. 또, 선거를 통해 정치 행위자인 정당을 만나기 때문에 그 때나 되어야 비로소 정당을 경험한다. 이것이 한국 정치와 정당의 현실이라면, 정당은 아직 일상이라 할 수 없다. 선거가 한참 남았는데도 정당(또는 정당이 되려는 세력)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제1 야당의 혼란과 난맥이 두드러진다. 국정감사의 와중에 이번 주가 정점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하는 말 한 가지. 홀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니 당사자들은 억울해 하지 마시라, 무릇 정당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또한 미리 말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한참 떨어진 자리에서 관전평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현실 역시 지극히 정치적이라고 할 때 정치의 실력은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시끄러웠던 메르스, 지리멸렬한 후속 대책을 보라. 응급실 개선은 어디로 가고 공공병원의 앞날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정당과 정치가 오늘과 같지 않았다면 후속 조치 또한 다르리라 확신한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첫 번째 현상은 계파 또는 정파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정당이 박정희 시대의 여당이나 유신정우회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누어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한국의 메이저 정당들의 파당은 나누고 나누어진 기준이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친박’과 ‘비박’은 무엇이며 ‘친노’와 ‘비노’는 또 누구인가. 이름부터 그렇지만 이런 잣대가 무슨 정파라고 할 수 있는지 민망하다. 하다못해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소박한(?) 구분이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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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희생과 봉사만 강조할 것인가

  메르스 대란은 공포를 불러온 만큼이나 ‘미담’을 양산했다. 위험 앞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칭찬 받을 만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개인의 이타적인 행동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일선에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 의료인들의 노력이 컸다. 충분한 정보도 없이 경험하지 못한 질병에 대처하는 것이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을까. 직업윤리만으로는 그 많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료기관들의 노력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허술한 시스템과 엉터리 대처로 사태를 키운 데도 있으나, 많은 병원과 의원들이 힘을 모았으니 그래도 일이 이만한 정도가 아닐까 한다. 공공의 이익을 생각했을 그들 병의원은 대부분 이름도 빛도 없는 익명의 기관들이다. 보건소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애쓴 수많은 공무원들도 있다. 이번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24시간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2교대로 주말도 반납한 채 메르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표현은 어디 한두 군데 보건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시민들이라고 빠질 수 있을까. 방역당국의 조치와 지침에 한국 사람들만큼 잘 따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병원 쇼핑이다 뭐다 해서 환자들의 자세를 탓하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 침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 상황에서조차 사회와 공익 논리가 압도하지 않는가.   어느 사람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으니, 그만큼 많은 당사자들이 고생하고 헌신했다. 학교, 군대, 야구장이나 시장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이르기까지, 메르스는 온 국민을 동원했고 모든 시민의 자발성을 요구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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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한동안 관심은 메르스 또는 그 비슷한 일에 쏠릴 수밖에 없겠다. 건강이나 보건의료와 관련된 일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방식으로 말하면 기-승-전-메르스가 될 지경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정부가 하는 몇 가지 일을 보면 영 어이가 없다. 기-승-전-메르스도 모자랄 판에, 이번 사태의 핵심을 이해하고 있고 성찰과 반성이 있는지 절로 의심스럽다. 거칠고 뜬금없는 모양이 그냥 사건이 아니라 무슨 음모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첫 번째는 공공연하게 의료의 ‘산업화’와 ‘영리화’ 정책을 다시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한복판에서 7월 1일 보건복지부가 낸 보도자료는 잠시 눈을 의심케 했다 (바로가기). 메르스든 무엇이든 의료 영리화 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한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이 말을 쓰는 이유는 전쟁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의료수출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6월 30일 60여명의 의료·법조·금융 전문가 등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들’은 과연 뭘 하겠다는 것인가? 보도자료에 이렇게 적혀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국 의료진출이 소규모 의원에서 대형화·전문화되는 추세로 무엇보다 국가별·지역별 맞춤형 전략을 통해 초기 리스크를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의 성과와 실패요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문가 자문단을 중심으로 한 포럼 운영을 통해 각계 각층의 중지를 모아 현장감이 있고 실효성이 있는 ‘의료수출 5개년 종합계획’을 하반기에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침 이런 때 이런 일을 추진하고 보도자료까지 내는 것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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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수련 환경의 개선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는 많은 의사들은 멋있다. 실력은 물론이고 인간성도 그만이다. 최근 것으로는 2013년 배우 주원이 주인공 역할을 한 드라마 <굿닥터>가 생각난다. 자폐증을 가진 소아과 전공의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것이다. 현실의 의사는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 가운데서도 전공의의 생활과 ‘활약’이 특히 차이가 크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어차피 꿈과 환상을 좇는 것이라 해도, 현실의 전공의는 그처럼 ‘폼’이 나는 일이 드물다.   우선 전공의라는 말부터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줄인다. 전보다는 덜 헛갈리니 사정이 나아졌다. 다만 ‘전공’이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공이라는 말이 전문 영역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과정에 있다는 것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모호함은 전공의의 이중적 위치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기 위해 훈련받는 과정에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역할을 하는 상태. 이들을 고용한 입장(예를 들어 병원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다. 그들은 훈련생이면서 동시에 환자 진료에 큰 몫을 하는 직원이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이들에게 월급을 주어야 하는가, 비용을 받아야 하는가. 물론 실제로는 두 가지 역할을 다 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 스스로는 병원에 고용된 직원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고용한 병원 쪽에서는 ‘수련생’이나 ‘수습’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어느 나라건 전공의의 불만은 폭발성을 내재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큰 사건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970년을 전후한 ‘수련의 파동’이다. 당시 신문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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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헌법의 조건

  헌법은 보통 사람의 일상 생활과 멀다. 아니 다들 그렇다고 생각한다. 죠지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 “굶어죽을 지경만 아니라면 시민들은 미련할 정도로 형이상학적”이지만, 그래도 헌법까지 마음을 쓰는 이는 적다. 그런 헌법을 바꾸자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대통령과 여당, 야당 사이에 벌어지는 현실 정치가 복잡하더라도 개헌 논의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들 사이에 걸려 있는 정치적 이해가 질기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개헌 논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시끄럽다. 본론에 들어가지 못한 셈이다. 최근에는 여당 대표가 분위기를 띄었고 대통령이 말리는 모양새다. 여론과 언론의 논조도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논의하자는 쪽은 지금 권력구조가 가진 문제점을 불러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하다는 명분이 앞에 있다. 이 논리를 따르면 권력구조 가운데서도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개헌 논의를 반대하는 쪽도 이유가 분명하다.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는 개헌이 국민의 현실 이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략에 따른 개헌이라면 그들만의 거래와 야합일 뿐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하다. 정 권력구조의 폐해가 관심이라면, 다른 제도, 예를 들면 선거법부터 바꾸라고 반박한다.   어느 쪽임을 나눠야 한다면, 우리는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두 해 안에 결론을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실용적 이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과제가 헌법과 연결되어 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한 문제에 물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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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개혁’을 개혁하라

  작심하고 공공부문을 압박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래도 ‘개혁’이라면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일상사가 된지라 그리 낯설지 않다. 공무원 연금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묶은 종합 패키지라는 것, 그리고 되풀이되는 말의 약효 탓인지 ‘정상화’라는 대통령의 어법을 쓰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개혁인지 자해 행위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정권의 의례인지 판단하려면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핵심 한 가지는 바른 이름, 즉 정명(正名)이다. 공공부문과 공공을 제대로 규정해야 그 다음이 풀린다. 공공부문이 제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공익과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라기보다 흔히 비효율과 철밥통을 상징한다. 정부 고위직도 그리 알고, 생업에 충실한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비효율과 부패라면 꿀릴 것이 없는 기업이 가장 열렬하다.   다시 확인할 일은 국가와 시장, 공공부문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고 그래 왔던 국가와 경제가 공공부문을 ‘식민지’로 만든 탓에 오늘 같은 사달이 났다. 그 가운데서도 사익의 각축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가 대중과 시민을 배제한 것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지금 공공부문은 제 모습이 아니다. 개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히려 사익을 대변하는 국가와 경제 영역이 주인 노릇을 한 결과로 이 꼴이 났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국가를 그대로 둔 채로 국가화할 일도 아니고, 극단적인 사익 추구만 남아 있는 시장을 새로운 상전으로 맞이할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 개혁은 여전히(또는 새롭게) 어떤 사회적 통제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