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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PHI 연구보고서 2017-01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

2016년 3분기, 월 소득 하위 10% 이하인 최극빈층의 가처분소득이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이들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71만 7천 원이었습니다. 소득에서 세금·연금·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을 빼고, 의식주 생활을 위해 한 가구가 실제로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이 71만 7천 원이라는 겁니다. 이 와중에 2017년 예산에서 국민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액은 전년보다 2천 210억 원이나 감액 편성됐습니다. 국고 지원액이 줄어들면, 그만큼 가입자의 보험료로 충당해야 하는 금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누진적 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조세와 달리, 국민건강보험료는 비례적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담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보험료 부과 체계와 보험료 상한제는 실제 보험료 부담의 역진성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은 말 그대로 시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입니다. 부담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보험료 부과체계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 선정 기준 때문에, 사회적, 개인적 위기 때문에, 취약한 이들이 ‘체납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지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허리띠를 더 졸라매서 보험료 내라고 해야 할까요.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으며 보험료 납부하라고 해야 할까요. 보험료 때문에, ‘생계’를 포기하라고 해야 할까요. 정부는 체납을 무조건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수평적) 형평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촉과 체납처분(압류), 급여제한 등 비인간적 ‘처벌’을 가하고 있습니다. ‘체납자’들은 생존과 건강을 위협당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통계가 생산된 이래 단 한

서리풀연구통

경제만 좋아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사회정책과 건강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주관적 건강 평가 수준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 15세 이상 한국인의 35.1%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좋다’고 평가하여 OECD 평균인 69.2%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관련 자료 : The Health Status and Health Care Use of Koreans: A Glance Through OECD Staistics) 주관적 건강 상태뿐만이 아니다. 사회의 전반적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들 중, 자살률과 노동 시간과 같은 부정적인 지표에서는 최상위를, 행복도와 같은 긍정적인 지표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헬조선’의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OECD 평균보다도 높은데, 이는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이 불행하고 좋지 못한 건강 상태로 오래 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네 일상적 삶의 조건들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며,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나

서리풀연구통

누리 과정 못 받은 어린이, 초등 6학년이 되면…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어린이 조기 보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킨다   최근 2016년도 누리 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교육청이 대립하고 있다. 갈등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누리 과정이 중단될 경우 양질의 보육 및 교육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장 걱정된다. 누리 과정이란 만 3~5세 어린이들의 보육과 교육 기회 보장을 위해 전국의 어느 어린이집 또는 어느 유치원을 다녀도 공통의 보육·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2012년 3월부터 ‘5세 누리 과정’을 처음 도입하였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2013년에는 만 3~4세로도 확대하면서, 소득과 관계없이 해당 연령의 자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 유아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누리 과정 사업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생애 초기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동에

서리풀연구통

자선냄비의 진실, 당신의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아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닙니다   연말이다. 익숙한 구세군 자선냄비의 등장과 더불어, 연말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가 바로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TV 화면에 가득 담거나 거리마다 아픈 아이들 사진을 걸어 두고 치료비를 모금하는 모습이다. 모금의 선의와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모금된 금액으로 과연 제대로 된 치료를 제 때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지, 가엾고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모든 아이들이 동정을 통해서가 아닌 마땅한 권리로서 의료 이용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비급여 항목의 높은 비중, 비싼 약가 등의 문제로 말미암아 보장성 수준이 낮고, 이로 인해 여전히 의료비는 가계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서리풀 논평

환경의 역습이 노리는 사람들

  사람마다 올 여름이 덥다고 난리다. 실제 기온이 더 높을 수도, 그냥 더 덥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덥다는 것은 어차피 주관이 섞였고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수치만 보면 올 더위가 유난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울의 7월 평균기온이 지난 10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열대야가 연일 신기록을 세운다니 평균이란 말을 믿기는 어렵다.    물론 겨우 10년을 두고 기온 변화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은 100년, 200년 간격의 변화이다. 그 사이 지구의 온도는 0.5도에서 1.5도 정도 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의 감각으로는 1도 정도의 기온 변화에는 대체로 대범하다(!). 아열대 기후가 되었느니 또는 명태가 없어졌느니 하는 뉴스를 재미 삼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젠가 하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사실 기후변화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정부문서나 언론에도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연구소나 대학에서 발표하는 이 분야 연구도 훨씬 많아졌다. 말로나마 걱정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기후변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일부 전문가와 환경에 관심이 큰 사람들만 관심을 기울이는, 말하자면 비주류 의제의 신세라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기후변화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국제적인 분위기와 비교하면 영 뜨뜻미지근하다. 강 건너 불구경 분위기라고나 할까. 정치와 정책도 ‘녹색성장’ 담론이 압도하는 수준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서리풀 논평

경제위기는 약자의 건강위기다

경제가 심상찮다고 한다. 그냥 엄살로 받아들이기엔 위기의 징조가 많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다시 내릴 정도니 그냥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위기인지 또 대책은 무엇인지 늘 의심스럽다. 공연한 피해의식이라기보다는 위기를 핑계로 없는 사람이 더 많은 희생을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는 다른 무엇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악영향을 받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실업과 소득하락, 부채 증가와 서민들의 구매력 감소 같은 것 말이다.      위기라고 하지만, 정부 대책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대책은 사람이 빠진 ‘물화(物化)’의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암호와 같은 숫자만 난무하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경제위기가 불러 오는(또는 불러 올)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빠져 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식비와 교육비까지 줄이고, 병원마저 함부로 갈 수 없다는데, 어떤 대책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니 그 속에서 건강대책을 찾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기나 마찬가지다. 경제위기에 건강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대책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구된 것에 따르면, 경기 변동이나 경제위기는 모든 건강문제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몇몇 문제에 집중된다. 자살, 살인, 전염병 같은 것이 그렇다.      예를 들어, 2001년 발표된 송영종의 논문은 IMF 경제위기 직후 자살률이 위기 발생 3개월 후부터 6개월 후까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경제위기를 전후해 식중독 환자가 두세

서리풀 논평

더위, “사회적 죽음”을 부른다

  1995년 7월 12일부터 16일 사이, 미국 시카고에서는 최고기온은 낮은 날이 34도에서 높게는 41도에 이르렀다. 닷새 만에 739명이 폭염 때문에 사망했는데(사망자 수는 추정한 것이어서 조사에 따라 다르다), 미국의 어떤 재해와 비교하더라도 더 많은 숫자였다고 한다. 숫자도 숫자지만, 피해가 일부 집단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부분 사망자는 도심에 사는 빈곤층 노인이었는데, 냉방시설이 없거나 시설이 있더라도 전기료 때문에 더위를 그냥 견뎠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걱정해서 작은 창문조차 닫아 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2003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폭염과 사망도 유명하다. 8월 4일부터 18일 사이에 프랑스 전국의 기후관측소 중 3분의 2가 35도 이상의 최고온도를 기록했고 15%에서는 40도 이상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예년에 비해 1만 5천명 가까운 사람이 더위 때문에 더 사망한 것으로 분석했다. 도시에 있는 좁은 방(원룸이나 프랑스식 옥탑방이 많았다)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시카고와 비슷하다.               엄청나게 덥지만 않으면 괜찮을까 싶지만, 여름에 기온이 올라갈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종합한 정설이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될 리 없다. 1994년에서 2003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2006년 서울대 김호 교수 연구팀), 서울의 경우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사망률이 16.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다른 대도시에서도 경향이 비슷하다.    방식이야 어떻든 더위가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확실하다. 시카고나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다. 더위는 그저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